마태복음 13장의 겨자씨가 자라서 푸성귀보다 커져 나무가 되는 것은 의미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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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3장의 겨자씨가 자라서 푸성귀보다 커져 나무가 되는 것은 의미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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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는 어떤 씨보다도 작으나, 자라서 푸성귀보다 커져 나무가 되니,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들에 깃들입니다.(마13:32)

-And which is smaller than all the seeds; but when it has grown, it is greater than the herbs and becomes a tree, so that the birds of heaven come and roost in its branches.
-ο μικροτερον μεν εστιν παντων των σπερματων οταν δε αυξηθη μειζον των λαχανων εστιν και γινεται δενδρον ωστε ελθειν τα πετεινα του ουρανου και κατασκηνοιν εν τοις κλαδοις αυτου

버가모의 특징은 세상과 결혼하여 높여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높여졌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우러러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이것에 대해 경고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말씀의 큰 나무의 비유와 다음 구절의 누룩의 비유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의 말씀은 기독교계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구절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겨자씨의 본성(本性)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면 문제가 풀리게 됩니다. 겨자(mustard)로 번역된 헬라어 σιναπι [sinapi ; 시나피]는 '톡 쏘다'라는 뜻의 [sinomai ; 시노마이]에서 유래된 중성 명사형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톡 쏘는 열매와 톡 쏘는 잎을 산출하는 겨자는 나무가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식물계, 속씨식물문, 쌍떡잎식물강, 십자화목, 십자화과에 속하는 일년초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무가 아닌 풀이라는 뜻입니다.

다 자라면 약 1m 정도의 높이로 자라게 되는데 5cm 길이의 콩깍지같은 열매를 맺습니다. 콩깍지 안에도 여러 개의 콩이 나란히 들어있듯이 이 겨자 열매에도 많은 씨가 줄줄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씨의 직경이 1~1.5mm입니다. 깨알보다 작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입니다. 저는 코를 톡 쏘는 갓 김치를 참 좋아하는데 겨자의 청색 혹은 붉은색의 어린 잎이 바로 김치나 쌈채소로 사용되는 '갓'입니다. 이것이 겨자입니다. 이것이 겨자의 본 모습입니다.

창1:12는 하나님께서 "땅은 풀을 나게 하고, 씨 맺는 푸성귀를 제 종류대로 나게 하며, 씨 있는 열매 뱆는 나무를 제 종류대로 나게 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종류(種類 : kind)로 번역된 히브리어 מין [mı̂yn ; 미인])이라는 남성 명사형 단어를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풀은 풀을 산출하고, 나무는 나무를 산출하게 하셨고 바로 그것을 좋게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계에서는 깨알보다 작은 겨자씨가 나무가 된 것을 교회가 번영하고 번성한 예화로 즐겨 인용합니다, 만약 풀이 나무가 된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한 입으로 두 말씀하신 것이 됩니다. 자기의 종류대로 산출하게 하신 뒤 그것을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나무가 된 풀을 보시고도 과연 "좋다"고 하셨을까요?

오늘의 말씀은 그 나무에 새들이 깃들었다고 하십니다. 깃들다(roost)로 번역된 헬라어 κατασκηνοω [kataskenoo ; 카타스케노오]는 '아래'를 뜻하는 접두어 κατα [kata ; 카타]와 '텐트를 치다, 거처를 짓다'라는 뜻의 σκηνοω [skenoo ; 스케노오]의 합성어입니다. 좀 안좋은 표현을 하자면 '소굴을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겨자의 본 모습은 향신료이며 푸성귀인데 나무가 되어 새들의 소굴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칙에 완전히 위배되는 생명 현상입니다. 이것과 같은 예가 창세기에 있지요. 창세기 6장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던 타락한 많은 천사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사람의 몸을 점유하고 이 몸을 이용헤서 사람의 딸들과 불법적으로 결합하여 타락한 영들과 인류가 혼합됨으로써 인류가 오염되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 혼합은 개선의 여지가 없습니다. 치료도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물을 통한 심판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는 과거 창세기 6장에 오면 하나님께서 너무 잔인하셨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파멸적인 혼합의 유일한 해결책은 멸절(滅絶)이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네피림이 되듯이 풀이 나무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나무를 소굴로 삼은 새들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 즉 사탄과 그를 추종하는 악의 무리들입니다. 사탄의 세력은 풀에 깃들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통제와 제한을 벗어나버린 나무에 깃듭니다. 오늘날 교회는 왕국의 체현으로서 음식을 제공하는 푸성귀 같아야 합니다. 만약 교회의 본 모습이 바뀌어 나무가 된다면 악한 자들의 소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다음 구절인 마13:34에서 언급된 누룩(leaven)으로 번역된 헬라어 ζυμη [zume ; 주메]는 '열을 가하여 끓이다, 부글부글 끓다'라는 뜻을 가진 ζεω [zeo ; 제오]에서 유래된 여성 명사형 단어입니다. 헬라어 어원으로 본 누룩은 가는 곳마다 모두 부풀려버리는 누룩의 본성을 보여주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5:6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라고 하십니다. 누룩은 우리 자신을 자만하게 하고 과신하게 만들어 교회 안에서의 몸의 건축을 방해하고 분열을 가져오는 모든 요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 안에 숨겨진 은근한 자랑, 다른 이들보다 나를 더 낫게 여기는 것 등은 주메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사 직분을 맡기 전에는 참 신실한 지체였는데 어떤 봉사 직분을 맡고 부터는 자기 자신이 이기는 이가 다 된 양 처신하는 지체도 보았습니다. 또 어떤 봉사자는 아주 겸손한 태도와 말투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본인은 겸손으로 자신의 야심을 철저히 숨겼다고 여기겠지만 생명이 있는 이들은 그것이 흠뻑 부풀어있는 누룩임을 적나라하게 모두 봅니다.

겨자 씨인 우리는 겨자 나물이 되어서 사람들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밀가루인 우리는 결코 누룩을 허용해서는 안되며 또 다른 밀가루인 지체들 위에 군림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결코 지체들 위에 내가 있지 않고 내 아래에 지체들이 있지 않습니다. 오, 주 예수님! 오늘 경고의 말씀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악한 자들의 소굴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깨우시며 어떤 경우에도 지체들 위에 자신을 두지 않도록 우리를 태도가 아닌 마음으로 엎드리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글쓴이:정만, 출처: 네이버 블로그 - 고운 가루에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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