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구원의 투구를 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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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광주리 가득히

 

제 9장 구원의 투구를 씀(1)

대전교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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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분부하셨다. 이것은 두 나무가 상대적인 것을 보여준다. 한 면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또 한면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선악 지식의 나무가 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그들에게 온 가장 큰 영향은 그들이 얻은 지식이다. 사람이 아직 타락하기 전에도 생각과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나 타락 후의 생각과 두뇌의 대부분은 당초에 하나님이 정하시고 원하신 바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서 617절에서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머리가 구원받아야 할 필요성을 볼 수 있다. 머리가 구원받지 않고 덮이는 것이 없다면 영적 전쟁이 있을 때 사탄을 대적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 곧 머리의 구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112절에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 가운데 스스로 총명하다는 사람과 수완을 쓰는 사람과 자신을 평범하지 않다고 여기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시도록 은혜를 구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칙은 하나님의 뜻과 은혜에 근거한 것이지 우리의 총명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공과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당신 앞에 놓인 어떤 일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어떻게 행해야 옳은지를 모른다 하자. 당신은 좌우장단을 생각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된다.

에덴 동산의 선악 지식의 나무는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심겨져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아직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고 선악 지식의 나무의 실과를 먹고 있다. 여전히,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가, 저렇게 하는 것이 좋은가?”를 묻는다. 모두가 선악 지식의 질문이다. 바울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총명을 의지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는 책임을 지면 된다.


로마서
122절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결과를 책임지신다.

우리가 말한 그리스도인의 총명이 쓸모없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우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슬기로움이 하나님의 손길에는 쓸모없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어리석음도 하나님의 손에는 쓸모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총명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어리석음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 일만이 옳은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별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행한 후에 발생하는 영향은 하나님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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