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예수께 고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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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광주리 가득히

제 5장 예수께 고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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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예수께 고함

성경
: 14:1-12

그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6:30-32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이 두 군데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두 폭()의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하나는 슬픈 그림이고 하나는 기쁜 그림이다. 한 폭의 그림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그들의 선생의 죽음이라는 뜻밖의 참화(慘禍)를 당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요한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을 매장한 뒤 주 예수께 고했다. 또 한 폭의 그림은 주님의 제자들이 보내심을 받아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십분(十分) 즐거운 일이다. 제자들은 이런 일을 주께 고했다.

 성경의 기록에서, 주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신 곳은 많으나 사람이 주님께 고한 곳은 많지 않다. 사실 주님은 우리가 말을 고할 수 있는 주님이시다. 주 예수님은 그분에게 쉽게 말을 고하는 것을 허락하시는 분이다. 주님은 어떤 말을 고하든지 허락하신다. 이 두 군데 성경에서도 우리에게 대한 주님의 동정을 볼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고난과 기쁨이 있을 때 우리의 근심이나 기쁨을 말할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사람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사람에게 말하지만 그 사람이 듣지 않는다. 우리가 당한 어렵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말해줄 때 그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자기와 관계없는 일로 여긴다. 우리가 하늘같이 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달려가 말할 때 사람들은 관심하지 않는다. 어떤 때 우리가 아주 기쁘게 느끼는 일을 달려가 말해줄 때 그 사람은 우리를 이해 못하고 함께 즐거워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 우리가 답답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우리의 답답함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체험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근심이나 즐거움을 알지만 함께 느낌을 나누려 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기쁨이나 슬픔이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이므로 우리가 느끼는 바를 더 느낄 수 없다.

 

우리가 우리의 슬픈 일이나 기쁨을 말해 줄 사람을 얻으려 할 때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대한 왕으로 생각한다.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지만 작은 일을 경시(輕視)하지 않으신다. 당신은 주님에게는 큰 일을 고해야 들으시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작은 일도 전혀 경시하시지 않는다. 주님이 듣기를 원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일은 없다. 그분은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당신의 모든 일을 듣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자기 제자의 말을 듣기를 원하셨고 요한의 제자의 말도 듣기를 원하셨다. 요한의 제자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선생을 좇아 왔다. 그러므로 그들과 요한의 사이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의 선생이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어찌 그들의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성경에는 요한의 제자들이 헤롯을 나쁘다고 말했다거나 온종일 울었다는 기록이 없고 단지 그들이 요한의 시체를 가져다 매장하고 예수께 고했다는 기록만 있다.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을 장사한 후 나의 모든 것이 끝났다. 절망이다. 그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나도 모든 것을 잃었다. 나의 모든 소유도 그를 좇아가게 됐다.”라고 말한다. 이때가 곧 주를 가까이 할 때이다.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을 주께 고할 수 있다. 주님은 당신에게, 너무 세속적이고 감정이 많고 죽은 사람을 버리지 못한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당신의 정감(情感)을 알고,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신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나 친척이 사망한 아픔이 한번도 없으나 무엇인가를 잃은 것처럼 느껴질 때 요한이 죽은 것처럼 실망하게 된다. 당신의 하늘에는 푸른 빛깔이 없고 모든 경치와 사물에 생기가 없는 것 같고 출구를 찾지 못한다. 이럴 때 당신이 죽은 시체를 바라보며 울고 온종일 마음 아파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당신은 요한의 제자들처럼 시체를 묻고 주님께 고해야 한다.

 

 당신이 주님 앞에서 한 번 고하고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그분과의 친밀함과 그분에 대한 인식을 한 번 더 갖게 한다. 이러한 때 그분과 한 번 가까이 하는 것이 평소에 몇 백번의 교통을 갖는 것보다 낫다. 이렇게 해야만 생명이 진보할 수 있다. 당신이 당신의 어려움을 주 앞에 가져가 그분께 고할 때 그분은 능히 당신을 위안하고 부축하실 수 있다. 주님 앞에서 눈물을 흘려 보지 않거나,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을 주 앞에 가져와 그분과 함께 나누지 않거나 비밀한 일을 주님과 대화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과 친밀한 교통이나 왕래가 없는 사람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기도와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께 고할 때만이 주님과 더 친밀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요한의 제자들이 마음 아픈 일을 주님께 고하자 그들의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당신이 주님께 무슨 일을 고하든지 그분은 기꺼이 들으신다. 사람은 모든 사람과 뜻을 같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모든 사람과 뜻을 같이할 수 있으시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에 그분은 뜻을 같이하신다. 그분은 모든 사람의 일을 돌보신다. 그분의 마음속에는 이 세상에 오직 당신 한 사람의 일만이 있는 것 같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질고를 짊어지신다. 당신이 아무리 연약할지라도 그분은 기꺼이 당신과 뜻을 같이하며 짐을 지기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근심을 감당하시고 우리의 고()함을 인내로 듣기 원하신다. 우리는 그분이 듣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일을 고하지 않을 정도로 게을러서는 안 된다. 그분은 당신의 말을 듣기 위하여 당신의 고()함을 기다리고 계신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 아픈 일을 들으실 뿐 아니라 우리의 기쁜 일도 들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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